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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

자연경관

항구
진두선착장, 영흥선착장, 검은여선 선착장
산림녹지
국사봉, 망태산, 양토봉
해변경관
측도, 목섬, 농어바위
해수욕장
십리포해수욕장, 장경리해수욕장
기타
영흥대교, 선재대교, 함상공원, 선재바다낚시공원

생태자원

갯벌
구봉도남부갯벌
야생화군락지
소사나무 군락지 (십리포해수욕장 내)

주요인물 및 문화자원

  • 해군 영흥도 전적비
    6.25 중 순국한 해군 영흥지구 전투 전사자와  대한청년단 방위대원 14인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
  • 배익현
    영흥 출신으로 구한말에 무과(武科)에 합격해서 관직에 올라 고종(高宗) 황제의 호위군관이 되었으나, 1907년 8월 우리나라 군대 해산할 때 해직되었다. 이후 의병 활동을 벌이다 기진하여 향리로 돌아왔다.
  • 임병래
    평남 용강 출신으로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첩보부대의 창설요원이 되었다.
    6·25 전댕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특수공작대의 조장으로 선발되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인천, 서울지역으로 잠입하여 북한군의 상황 등 기밀을 탐지해 우리 해군본부와 미군사령부에 제공하여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9·15 인천상륙작전 개시 전날 영흥도를 점령한 인민군 1개 대대의 공격에 맞서 10여 명의 대원들과 맞서 싸우다가 포위당하자 스스로 자결, 전사하였다.
  • 클라크
    미 해군 대위로 한국 해군정보부대 KLO-8240 부대를 이끌고 팔미도 등대의 불을 밝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큰 공을 세웠다.
    이들은 영흥도를 거점으로 활동했는데 최후까지 살아남아 팔미도 등대를 확보한 대원은 유진F. 클라크 해군 대위, 한국군 최규봉(崔奎峰) 분견대장, 계인주(桂仁住) 대령, 연정(延幀) 소령, 존 포스터 미육군중위, 클리크 혼 미 육군소령 등이었다.
  • 뚱뚱바위
    (마귀바위)
    모양이 크고 뚱뚱하여 '뚱뚱바위'라 하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무거워 마귀할멈이 갖다 놓았다 하여 '마귀바위'라 함
  • 용마바위
    이 바위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 마을에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날개 달린 사람은 훗날 역적이 될 것이라 하여 이  아이를 죽이려 했다. 이 아이는 자기를 죽이려는 것을 알고 말을 타고 이 바위를 한바퀴 돌더니 바위를 넘어 어디론 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후 바위 위에는 밟고 넘은 말 발자국이 흔적으로 남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마바위'라 하게 됨.
  • 쿵쿵바위
    이 바위는 이 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돌아와 이 바위 위 에서  손질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바위 위에서 발을 구르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쿵쿵 소리가 자꾸만 났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다시 내려 왔다가 또 올라가서 굴러 보기를 여러 차례 해보았다. 그래서 여전히 구르기만 하면 속이 빈 것처럼 쿵쿵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쿵쿵바위'라 부르게 되었 는데 근래에는 많은 풍황에 의해 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 농어바위
    이 바위는 영흥도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옛날에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획이 부진하여 생계가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던 중 어느 날 밤에 꿈을 꾸게 되었다. 그 가난한 어부는 꿈  속에서 한 바위 위에서 신나게 낚시질을 하다가 그만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어부는 다음날 그 꿈속에서 낚시질하던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바로 이 바위였다. 그래서 그 어부는 이 바위 위에 서 낚시질을 했더니 많은 고기가 잡혔다. 그 고기 중에는 특히 농어가 많이 있어 갑 자기 어렵던 생활이 펴지게 되고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부터 농어가 많이 잡 히는 바위라하여 이 바위를 '농어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영흥목장 마싱터
    조선시대 영흥도에 설치 되었던 목장의 터 [신중동국여지승람기록,중종때조성]
  • 영흥진터
    1872년 화량진을 영흥도로 옮겨서 1984년까지 존속[고종실록]
  • 사마기
    이곳은 긴 돌줄 부분으로 간조나 만조는 물론 해일로 인하여 바지락 껍질 굴껍질 등 이 쌓여  큰 뚝을 이루게 된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사마기'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업벌
    이 벌은 원래는 고기가 많이 잡히고 물이 맑은 곳이라 하여 어청도라 부르던 지역인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업이 성행하고 큰 배가 오가는 곳이라 하여 '업벌'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큰우물
    이 우물은 마을 전체가 식수로 사용했던 자연 우물로 이 마을의 외진 곳에 있었다.  그러므로 마을 처녀들은 더운 여름이면 이 우물에서 목욕을 즐기기도 했다고 하여 처녀들이 목욕하던 우물이란 의미로 '처녀물'이라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이 처녀물이란 말이 좋지 않다 하여 조선조 중엽 이 우물의 이름을 '큰 우물' 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 진여
    바닷가로 이곳에서 바라보면 인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곳을 한 번  다녀오려면 산부리가 하도 길어서 한 번 갔다가 오는데만 한나절이 넘는다. 아무리 장정이라도 한 번 다녀오면 허기가 질 정도로 지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허기가 지는 곳이라 하여 '진여'라 하게 되었다고 함.
  • 노적봉
    산의 높이가 해발 200m로 먼 곳에서 이 산을 바라보게 되면 마치 가을에 수확을 한  후에 볏단을 쌓아 놓은 형상과 같다 하여 이 산을 '노적봉'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국사봉/흥존탑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해발 250m나 되며 고려 말 공민왕이 이성계에 몰락 당한  후 고려의 왕족들이 이 곳 영흥으로 피난하여 이 산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달보는재
    큰골에서 용담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 사람들이 보름이 되면 이 고개위에서 달맞 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여 이 고개 위에서 달맞이를 했다는 의미로 '달맞이 고개' 또는 '달보는 재'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붉은노리
    선재리의 구름말에서 내리의 붉은노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내리에 있는 '붉은노리'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붉은노리 고개'라 한다.
  • 부도
     서남방 18km해상에 있는 면적 0.020km2에 달하는 아주 작은 섬으로  해안선의 길 이가 1km정도이며 최고 높은 지역이 해발 73m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섬에는 등대가 설치되어 있어 야간에 운항하는 모든  선박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며 관리 자들만이 유일한 이 곳의 주민들이다. 식수가 나지 않아 빗물을 정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섬 모양이 한  마리의 오리가 바다에 떠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부도'라 했 다고 한다.
  • 측도
    영흥도 남방 4.5km, 선재도 서쪽 1km 지점에 있다. 이 섬은 간조시에는 선재도와 연 결되어 도보나 차량 등으로 왕래할 수 있으며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이 섬은 주변에 물이 맑아 고기가 노는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바다 밑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측량할 수 있다고 하여 '측도'라 했다고 한다.
  • 선재도
    면적이 1.97km2이며, 해안선의 길이가 12km에 이르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이다. 해안에는 염전이 개발되어 있고 비교적 평지가 많아 농경지가 넓은 편에 속한다. 특히 선재도의 바지락 양식장은 유명하다. 이 섬은  원래 고려 시대에는 '소우도'라 불리던 섬으로 조선 후기까지 그대로 불리어 오다가 1871년 경부터 '선재도'라 불리게 되었 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안도, 호도, 칙도, 주도를 병합하여 선재 리라 하여 부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옹진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평택임씨묘역
    영은사 주변의 평택임씨 일가묘역 이다. 묘표와 문인석 ,상석 등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석물조성(영은사/임현규정문/임세제묘등)